"성조숙증 약물 치료, 부작용 없을까?"… 성인기 추적 관찰 결과는
아이의 성장은 부모에게 가장 큰 기쁨이자 관심사 중 하나다. 하지만 또래보다 지나치게 빠른 성장은 때로 '성조숙증'이라는 질환의 신호일 수 있어 세심한 관찰이 필요하다. 성조숙증은 성장판이 조기에 닫혀 최종 성인 신장이 작아질 가능성을 높일 뿐만 아니라, 아이가 겪을 수 있는 심리적 위축과 부적응 문제와도 연결될 수 있어 조기 진단과 적절한 개입이 중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호르몬 억제 치료가 향후 불임이나 난임 같은 생식 기능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 섞인 시선도 존재해, 치료를 앞둔 부모들의 고민을 깊게 만들기도 한다. 이에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노지혜 원장(온소아청소년과)에게 성조숙증의 의학적 정의와 구체적인 진단 기준, 그리고 약물 치료의 안전성과 예방을 위한 생활 관리법에 대해 자세히 들어봤다.
성조숙증의 의학적 정의는 무엇인가요?
성조숙증은 사춘기가 또래보다 비정상적으로 빨리 시작되는 질환을 말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여아의 경우 만 8세 이전, 남아는 만 9세 이전에 유방 발달이나 고환 크기 증가 등 2차 성징의 징후가 나타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최근 아이들의 골격이 커지고 성숙이 빨라지는 경향이 있는데, 환경적 요인이 작용하나요?
네, 그렇습니다. 영양 상태 개선, 서구화된 식습관, 운동 등 환경적 요인이 작용하면서 대한민국 아동의 평균 신장이 전반적으로 커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성장 환경의 변화는 사춘기 시작 시기에도 영향을 주어 성조숙증 발생 빈도를 높이는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부모의 사춘기가 빨랐다면 자녀에게 유전될 가능성이 있나요?
성조숙증은 가족력이 있는 경향이 있습니다. 진료 시 부모님의 키와 어머니의 초경 연령을 중요하게 문진하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실제로 어머니가 초경을 빨리했거나 형제자매 중 성조숙증 치료 이력이 있는 경우, 해당 아동 역시 성조숙증이 나타날 확률이 높습니다.
성별에 따른 발병 원인이나 비율에 차이가 있나요?
전체 성조숙증 환자 중 여아의 비율이 월등히 높습니다. 여아의 경우 특별한 원인 질환 없이 발생하는 '특발성 성조숙증'이 대부분입니다. 반면 남아는 전체 환자 비율은 적지만, 특발성보다는 뇌 병변 등 다른 기질적 원인에 의한 2차성 성조숙증일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아 주의가 필요합니다. 다만 최근에는 비만도가 증가하며 남아에서도 특발성 성조숙증이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단순히 키가 빨리 크는 것과 성조숙증을 구별하는 기준이 있나요?
일반적인 소아기(초기 아동기와 사춘기 사이)의 정상 성장 속도는 연간 5~8cm 정도입니다. 만약 이 시기에 갑자기 성장 속도가 급격히 빨라지거나 1년에 8cm 이상 자란다면 성조숙증을 의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영유아 검진 등을 통해 아이의 성장 패턴이 급격히 변하는지 지속적으로 관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조숙증의 구체적인 진단 및 치료 기준은 어떻게 되나요?
여아는 만 9세 이전, 남아는 만 10세 이전에 진단될 경우 치료를 고려합니다. 진단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 사춘기 징후가 해당 연령 이전에 진행된 상태
● 골연령(뼈나이)이 실제 나이보다 1년 이상 앞서 있는 경우
● 성선자극호르몬 방출호르몬(GnRH) 자극 검사 시 황체형성호르몬(LH) 농도가 5IU/L 이상으로 증가된 경우
위 조건에 부합할 때 치료적 개입이 필요한 것으로 봅니다.
성조숙증을 반드시 치료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치료의 주된 목적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 최종 성인 신장 보호: 사춘기가 빨리 오면 급속 성장기가 일찍 시작되고 끝나버립니다. 골연령이 빨라져 성장판이 조기에 닫히게 되면, 결과적으로 클 수 있는 기간이 단축되어 최종 성인 키가 작아지게 됩니다.
● 심리적 적응: 또래보다 이른 신체 변화로 인해 친구들과의 외모 차이를 느끼고, 이로 인한 위축감이나 부적응 등 사회심리적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 건강 문제 예방: 이른 여성호르몬 노출로 인해 향후 여성 질환 등의 위험이 높아질 수 있어 이를 예방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치료는 어떻게 진행되며, 부작용 우려는 없나요?
표준 치료법은 'GnRH 작용제(agonist)'를 투여하는 것입니다. 이 약물은 뇌하수체에 지속적으로 작용하여 성호르몬 분비 신호를 무디게 만들고 사춘기 진행을 일시적으로 멈추게 합니다. 오랜 기간 사용되어 온 약물로, 장기 추적 연구 결과 성인기 건강이나 생식 기능(불임 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입증되었습니다. 치료 후 생리통이나 다낭성 난소 증후군 등이 증가한다는 우려도 있었으나, 연구 결과 유의미한 차이는 없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가정에서 실천할 수 있는 예방 및 관리 수칙이 있다면요?
유전적 요인은 바꿀 수 없지만, 환경적 요인은 관리할 수 있습니다. 특히 비만은 렙틴 호르몬을 분비해 사춘기를 앞당기므로 체중 관리가 필수적입니다. 가정에서는 다음 사항들을 실천하는 것이 좋습니다.
● 식습관 개선: 고칼로리·단당류 간식 섭취를 줄이고 규칙적인 식사를 합니다.
● 수면 및 운동: 늦은 시간까지 깨어있거나 스마트폰(블루라이트)에 노출되는 것을 피하고, 충분한 수면과 규칙적인 운동을 해야 합니다.
● 환경호르몬 회피: 일회용품이나 플라스틱 용기 사용을 줄여 내분비 교란 물질 노출을 최소화해야 합니다.
성조숙증 진단을 받으면 모두 약물 치료를 해야 하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춘기 징후가 보이지만 호르몬 검사상 실제 사춘기 진행 반응(뇌하수체-성선 축 활성화)이 나타나지 않거나, 진행 속도가 더디다면 치료 없이 경과를 지켜보기도 합니다. 치료 여부는 증상이 가속화되어 최종 키나 정서 발달에 악영향을 줄 것으로 판단될 때 결정합니다.
치료 종료 시점은 어떻게 결정하며, 종료 후 관리는 어떻게 하나요?
뼈나이(골연령)와 실제 나이의 격차가 이상적인 수준으로 줄어들었을 때 치료를 종료합니다. 대개 치료를 마치면 자연스럽게 또래의 평균적인 시기에 맞춰 사춘기가 다시 진행됩니다. 다만 종료 후에도 6개월에서 1년 정도는 급격한 사춘기 재진행이나 성장 속도 변화 등을 추적 관찰하며 관리해야 합니다.
아이의 최종 키는 유전과 환경 중 어느 쪽의 영향이 더 큰가요?
환경적 요인의 영향이 훨씬 큽니다. 물론 부모의 키를 기반으로 한 유전적 예측치(부모 중간 키)가 기본 기준이 되기는 하지만, 영양 상태와 생활 습관의 개선으로 전 세계적으로 평균 신장이 커지고 있습니다. 네덜란드가 과거보다 평균 신장이 급격히 커진 사례나, 우리나라 아동들의 평균 키가 계속 증가하는 현상은 후천적 노력과 환경 조성이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함을 시사합니다.
소아 비만 치료에 다이어트 약물을 사용할 수 있나요?
최근 소아 청소년에게도 허가된 비만 주사제(GLP-1 유사체 등)나 경구 약물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약물보다 중요한 것은 생활습관 교정입니다. 소아기의 식습관과 생활 패턴은 평생 건강의 기초가 되므로, 약물에 의존하기보다 본인 스스로 식사 조절과 운동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실천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성조숙증 치료에 대해 인위적인 개입이라 여기며 거부감을 갖거나 우려하는 부모님들이 계십니다. 하지만 이 치료는 아이가 그 나이 또래에 누려야 할 신체적, 정서적 시간을 지켜주는 과정입니다. 너무 이른 성숙으로 아이가 겪을 혼란과 성장 손실을 막기 위한 것인 만큼, 의료진을 믿고 적극적으로 치료와 관리에 임해주시길 당부드립니다.
기획 = 백선혜 아나운서